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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 요한8:31-36 자유케하는 복음

8.26 요한8:31-36 자유케하는 복음

오늘 시찰회로 저희 교회에서 모이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작년에 하고 올해하게 되고 제가 온지 꼭 1년째가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주님은 진리를 알면 자유케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유의 반대말은 부자유요 구속일것입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자유없이 어떤 구속과 간섭으로 살아가는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것은 없을것입니다.

갇힌 자유인 열린 수인

부활은 단순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옛 삶의 재생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삶의 시작, 곧 영원한 생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죽었다가 깨어날 때 우리 자신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강하며 완벽한 인간으로 변모된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 유경재부활과 하느님 나라

 

부활한 삶을 살고 싶은가? 그 때를 먼 미래로 미루지 말라. 지금 당신의 몸을 쪼개도록 하라. 그분처럼 우리의 몸을 쪼개어 남에게 나누어줄 때 우리는 그분처럼 남에게 부활의 몸이 될 것이다. 부활의 삶은 ''를 사라지게 하여 '세상'을 살리는 데 있다. --- 이제민부활의 삶을 살기 위하여

 

죽음의 언어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언어는 자유의 언어입니다. 부활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고, 죽음은 부활에 대한 사랑입니다. 죽음과 부활의 교훈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 서광선죽음과 부활 : 믿음, 희망, 사랑 그리고 자유

 

그리스도인에게 삶과 부활은 자기의 삶을 비롯하여 다른 이들의 삶을 돌보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생명을 수용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대성을 사는 길이라고 믿는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나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로마서 8:37~38) --- 서공석부활언어의 실태와 나의 신앙

 

부활은 사랑의 완성이다. 부활의 구체적인 형태와 장소와 영원성은 아직도 내게는 숨겨져 있는 신비이지만, 사랑의 힘을 신뢰하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지구와 우주를 당신의 생명 안에 영구적으로 안으시리라 믿고 있다. --- 김승혜세계 신비사상가들과의 대화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삼독(三毒)이라 함.

탐진치 [貪瞋癡]

 

무명-우리가 진리를 알면 우리는 자유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갇혀있고 고통가운데 있고 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하는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의 근본의(根本義)에 통달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

 

십이인연(十二因緣)의 하나이다.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무상(無常) ·무아(無我)함을 모르고 갈애(渴愛)를 일으켜 윤회(輪廻) ·상속(相續)의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무명은 가장 근본적인 번뇌(煩惱)이다. 불교는 인간의 윤회적 생존을 직시하여, 그 윤회적 생존을 초월함으로써 해탈을 얻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윤회의 원인이 되는 무명을 멸각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은 소멸될 수 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진여법(眞如法)이 본래 평등일미(平等一味) ·무차별(無差別)한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망상심(妄想心)이 생기며 그것이 업()이라 하였다. 이 망상심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며, 이 근본무명에서 파생된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한다. 그러나 모든 존재에 불성(佛性)이 있다는 사상과 함께, 무명과 불성은 얼음과 물의 관계와 같이, 일체번뇌의 근본인 무명의 실체가 그대로 청정한 불성이라는 사상도 나타났다. 이는 인간실존의 절대긍정이라 할 수 있다.

 

도를 알면 오늘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진리를 알아서 자유함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율법에 갇혀있고 죽음에 갇혀있고 미움과 싸움에 갇혀있습니다. 명예에 노예가 되고 돈에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자유라는 선물을 줍니다. 무지는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저는 때로 신앙생활을 통해서 나의 무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우치고 책을 통해서 깨달음을 통해서 다른사람의 말을 통해서 배우게 될 때 그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종이 되거나 억압받고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오직 깨닫는자만이 진리를 아는자만이 살게 됩니다. 자유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세상사람들은 출세와 돈과 명예에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게 되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세상것들에 얽매이는 한 우리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디모데후서6:10에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청년은 영생을 얻기를 원했지만 물질 때문에 근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때로는 책을 통하여 우리가 못보던 것을 보게 됩니다.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종교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깨닫게 하는것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처럼 진리를 깨우치도록 가르치는것입니다.

 

우리는 비진리를 진리처럼 알고 있을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 올바른 주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비로서 자유함과 행복과 구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바리새인은 율법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법으로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고 하였습니다. 정결법 안식일법 모세의 법에 대해서 질문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율법에서부터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속박에서부터 자유함 그것이 바로 해방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두 자유케 해주십니다. 그물에서 벗어난 새같이 우리를 자유케 해주십니다.

 

누가복음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결박을 푸시고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진리를 배워 주님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9:1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린도전서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3:17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래서 진리를 알아야 우리는 자유롭게 된다. 신을 알아야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기도, 수행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순간순간 깨어있으면서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라보고 또 기도나 명상으로 기억을 잠재우는 고요한 마음을 계발해야 한다. 상대적인 진리가 필요한 시장에서는 그것을 사용해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또 절대적인 진리가 필요한 곳에서는 기억에서 벗어나서 고요하게 있으면 될 것이다. 상대적인 진리와 절대적인 진리는 모두 필요하다. 하나는 기억속에 축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을 잠시 버림(비움)으로서 가능하다

 

일상의 삶을 위해서는 상대적인 진리가 필요하고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진리가 필요한 것이다. 매순간에 깨어있으면서 참된 진리로 살아가고 또 기억이 필요할 때는 그때마다 꺼집어내서 사용하면 늘 자유로울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은 결국은 우리가 신성과 하나라는 의미다. 신과 연결이 되면 신의 진리가 우리를 통해서 흐른다. 우리는 통로인 것이다. 기억만 사용해서 살아간다면 신과의 연결이 끊긴채로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 결과 상대적인 진리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려도 고통은 피할 수없다. 우리가 바로 진리의 경로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진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진리가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의 진리가 아닌 우리가 진리 속에 있으며 진리가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다

 

진리를 알 때 자유가 있다는 말은 길이 있다. 답이 있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고민과 문제에성경은 답을 알려줍니다. 그때 우리는 자유를 얻습니다. 답을 얻지 못할 때 우리는 근심하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깨닫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20)

우리가 주님의 진리를 배우고 알므로 인하여 참된 자유함을 얻을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소식은 이 기별은 아름다운 것이요 축복된것이요 소망이기에 우리는 복된 소식이라고 합니다. 자유케 하는 복음 해방의 복음 소망의 복음이 생명의 복음이 우리를 더 풍성하게 아름답게 하고 영원하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일서2:9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고전13: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마태5:8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것임이요 우리의 눈이 뜨게 되는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안에서 참된 자유가 있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안에서 진리를 알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늘 자유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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